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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지혜

조선의 비밀 첩보원 '체탐인'

고전의 지혜 : 조선의 비밀 첩보원 체탐인 고전의 지혜 : 조선의 비밀 첩보원 체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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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선은 건국 초기 북방 영토를 확정 짓는 과정에서 여진족과 심한 마찰을 빚었다.
압록강 부근에서 여진족은 세력을 늘리며 수시로 국경을 넘어와 약탈과 납치를 일삼았다.
이에 세종은 몸소 알아보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체탐인(體探人)’을파견해 여진족의 거주지와
세력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한 후 대규모 군사를 동원하여 그들을 징벌하곤 했다.

고전의 지혜 : 조선의 비밀 첩보원 체탐인

압록강에 나타난 수상한 사내들

1433년, 압록강 건너 산속에 20여 명의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너희 둘은 나와 함께 마을 곳곳을 다니며 병력과 무기를 살핀다. 나머지는 산으로 통하는 주요 출입로를 확인하도록 하라.”

사내 세 명은 음식과 술을 들고 마을로 내려갔고, 나머지는 팀을 나누어 잠복했다.

“조선인이 무슨 일로 여길 온 거요?”
“임금께서 친히 내려주신 선물이 있어 왔소이다. 비록 민족은 다르나 우리 땅에 터를 잡았으니, 은혜를 베풀고 싶다는 어명이요.”

음식과 술을 보여주자 마을 사람들은 비로소 경계를 풀었고, 곧이어 술판이 벌어졌다.

고전의 지혜 : 조선의 비밀 첩보원 체탐인

세종의 어명으로 만들어진 특수부대

이곳은 압록강 지류인 파저강 근처의 여진족 마을. 조선은 북방 일대까지 영토를 넓혔지만, 여진족들은 여전히 국경을 넘나들며 조선 백성들을 죽이고 납치했다. 3개월 전, 여진족들의 악행이 극에 달하자, 세종은 신하들을 불러 모아 대책을 논의하게 되는데....

“이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이들을 토벌할 수 있는 계책을 마련하라.”

“섣불리 공격하면 아군의 피해가 클 수 있습니다. 우선 정탐자를 보내 그곳의 지리와 군세를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허나 정탐자가 적에게 붙잡힌다면 도리어 우리 정보가 누설될 수도 있지 않은가?”

“하면 술과 음식을 가져가 저들을 대접하는 척하면서 정탐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세종은 계책을 받아들였고, 곧 특수한 임무를 맡은 부대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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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여진족 공격에 혁혁한 공을 세운 체탐인

“놈들이 술이 깨기 전에 내부를 샅샅이 살펴보거라.”

세 명의 사내들은 여진족들이 술 취한 틈을 타 동네를 돌아다니며 인원과 무기를 확인했다. 근처에 잠복해 있던 사내들은 산으로 이어지는 길들을 확인하고 표시를 해두었다.

“허허, 덕분에 배불리 먹었소. 조선 왕에게 고맙다고 전해주시오.”

“앞으로도 종종 찾아오도록 하겠소이다.”

마을을 벗어난 사내들은 잠복해 있던 군인들과 합류한 후 조선으로 돌아가 정탐 결과를 소상히 보고했다.

“추위 때문에 대부분의 병력이 마을에 머물고 있어 당장 토벌하기는 어렵습니다. 날씨가 풀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농사를 지으려 산에서 내려올 때 습격하면 승산이 있을 것입니다.”

보고에 따라 조선군은 일정을 변경해 여진족을 공격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은밀한 정탐 활동을 통해 여진족 토벌에 공을 세웠던 조선의 비밀 첩보 부대, 이들이 바로 ‘체탐인’이었다. 체탐인은 적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작전을 짜는 임무를 맡았다.

대부분 군인이었으나,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귀화한 이민족도 체탐인이 되곤 했다. 위험한 일인 만큼 막대한 포상이 주어졌기에 체탐인들의 숫자는 급격히 늘어났다. 허나, 체탐을 빙자하여 이민족들과 불법으로 교류하거나 거짓으로 체탐 결과를 보고해 포상을 받으려는 자들이 있어 엄한 처벌을 받기도 했다.

조선의 비밀 첩보 부대, 체탐인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도적의 무리가 모두 산으로 올라갔다는 말을 들으니, 밤낮으로 근심하고 염려하옵니다. 오는 4월 10일경에 사람을 시켜 정탐하고 20일 이후에 강계에 모이면, 몰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덮쳐 치는 것이 어떠하오리까.” - 세종 15년 계축(1433, 선덕)

체탐인의 활약 덕분에 조선의 국경선은 점차 안정이 되었고, 이에 따라 체탐 활동 또한 줄어들게 되었다. 평화를 위해 일했던 체탐인이 평화로 인해 자신의 일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 벌어진 큰 전쟁으로 인해, 조선은 다시 체탐인을 찾게 되니, 전쟁 속에서 가치를 발하는 체탐인이라는 직업의 얄궂은 운명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정원이 대북정보와 해외정보 수집의 본분을 망각하고 지난 몇 년간 국내 정치 개입 등을 해왔다는 뉴스를 접하며, 조선시대 체탐인의 평화를 위한 은밀한 정탐 활동과 정신을 되새겨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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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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