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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대 영화

[7년의 밤] 되돌릴 수 없는 7년, 되살리지 못한 7년

원작 대 영화 - 7년의 밤 / 글-이대현 영화평론가 원작 대 영화 - 7년의 밤 / 글-이대현 영화평론가

정유정의 소설 『7년의 밤』은 참혹하고 참담하다. 우연히 살인을 저지르게 된 한 인간과 그 희생자인 소녀의 아버지의 비극적 운명이 7년이란 긴 세월 동안 치열하고 집요하게 이어진다.

살인과 복수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이 소설이 강한 추리의 구조나 스릴러적 분위기에 빠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건 자체보다는 그것을 둘러싸고 드러나는 두 남자의 뒤틀린 집착과 상처, 그것에 의해 드러나는 인간 본성을 날카롭고 냉정하게 응시한다.

그 본성이란 다름 아닌 아버지의 자식사랑이지만, 그 사랑은 결코 건강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하나 밖에 없는 어린 딸 세령을 잃고 미친 듯이 복수를 부르짖는 오영제의 사랑은 정신병적 소유욕과 그에 따른 폭력과 구속이다. 그에 맞서 아들 서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댐의 수문을 열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은 재앙을 일으킨 최현수의 부성애 역시 무자비한 아집과 이기주의이다.

‘7년의 밤’은 그것이 사회적 이유가 아닌
성장기에 그들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오영제에게 그 상처는 집착과 적개심이다. 최현수 역시 자신은 평생 벗어나지 못했지만, 아들에게는 결코 물려주지 않으려는 유산인 아버지의 폭력이다. 둘은 상반되면서도 비슷하고, 비슷하면서도 이질적이다.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도 아니다. 선을 위해 악을 저지르고, 악을 선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어긋난 자식사랑을 가진 아버지와 아버지가 우연히 저질러진 살인과 죽음을 놓고 운명처럼 맞부딪친다. 풀지 못해 잘라버린 실타래처럼 자신과 가족의 삶까지 산산조각 낸다. 운명이다. 산골 수몰지구 댐의 경비팀장으로 발령을 받은 최현수가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미리 사택을 보러 가지만 않았어도, 세령이 아버지의 폭력에 집을 뛰쳐나오지만 않았어도 그들에게 7년이란 길고 긴 지옥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원작 대 영화 - 7년의밤 / 글-이대현 영화평론가

그러나 운명은 둘을 같은 시간 위에 던져 그들로 하여금 ‘지옥’의 길을 걷게 한다. 세령이 갑자기 길로 튀어나와 어둠과 물안개 속을 헤매던 차에 부딪혀 쓰러진 순간 최현수가 본 것은 눈앞의 흰 몸뚱이가 아니었다. 소설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한 남자의 세계를 보았다’고 말한다. 동시에 광기가 서린 또 한 남자(오영제)의 세계도 박살이 난다.

조각이 난 운명이 몰고 온 참혹하고 끈질긴 비극을 소설은 7년 동안 과거와 과거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넘나들면서 퍼즐처럼 꼼꼼하게 맞추어 간다. 생물학적 아버지는 아니지만, 세령과 서원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비춰지는 댐의 경비원이자 잠수사이며 작가인 안승환이 있지만 그 역시 지옥에서 그들을 건져낼 만큼 전능하고 영웅적인 구원자는 아니다.

이렇게 ‘7년의 밤’을 보내는 등장인물들은 두 남자를 따라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이악스럽게 사는 최현수의 아내와 남편의 폭력과 독선을 견디다 못해 가출한 오영제의 아내까지도. 소설은 선악의 경계도 불분명하고, 권선징악의 위안도 없으며, 반전의 짜릿함에 매달리지도 않는다. 짙은 물안개 같은 후텁지근한 공기를 마시는 듯한, 승환처럼 잠수복을 입고 수몰된 마을을 걷는 듯한, 악마와 함께 인간이 만든 지옥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원작 대 영화 - 7년의밤 / 글-이대현 영화평론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7년이란 길고 긴 밤의 여정을 흥미진진하게 단숨에 따라가게 만든다. 이유는 가면 갈수록 인간 심연에 자리 잡고 있는 악과 탐욕, 아픔과 진실을 성찰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죄의식과 복수심에 대한 깊은 관찰, 치밀한 사건의 구성과 상황 설정, 직구처럼 정확하고 예리하면서도 거침없는 문장들이 그것들을 명징하게 만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간성에 대한 고민 없이 추리와 반전의 묘미에만 매달리려는 다른 소설과 달리 『7년의 밤』이 가진 매력이자, 힘이다.

이런 매력들이 영화로서는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차라리 기막힌 트릭이나 반전, 아니면 치밀한 범죄와 그곳의 작은 허점을 파고들어 진실을 밝히는 천재 주인공의 등장, 과장을 하든 말든 선악이 분명한 인물의 대결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추리물이나 스릴러물이 더 반가울지도 모른다. 스티븐 킹이나 존 그리샴의 소설처럼.

애초 베스트셀러로 대중적 관심과 인지도가 높다 하더라도 『7년의 밤』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위험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다. 흥행을 포기하고 작가주의를 고집하면서 섬세한 영상언어로 원작의 모든 것을 녹여 내거나, 원작에서 소재와 줄기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새로 창작하거나, 아니면 대중성을 위해 장르 영화 특성에 맞게 원작을 바꾸고 빼고 더하는 변주를 하거나. 쉬운 일은 아니다. 치열한 고민 없이는 어느 것도 어설픈 흉내 내기에 머물고 만다.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가 좀처럼 나오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7년의 밤>이 선택한 것은 세 번째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중적 흥행을 노리는 상업 영화이니까. 감독(추창민), 배우(장동건, 류승룡)만 봐도 그렇다.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아무리 많은 독자를 가진 소설이라 하더라도 영화는 독자를 뛰어넘어 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들까지 불러들여야 하기 때문에. 85억 원이란 제작비를 무시할 수 없다.

만약 영화가 원작을 읽은 독자들을 실망시킨다면, 당연히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의 기대와 호기심도 자극하지 못한다. 영화 <7년의 밤>도 그랬다. 소설 독자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관객 숫자가 말해주고 있다. 1,000만 관객 동원을 기록한 감독과 이름만이 아닌 연기에서도 스타임을 보여준 배우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참패’했다.

무엇보다 영화로서의 상업성에 집착해 소설의 주제와 정서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빗나간 부성애에 의한 죄악과 파멸을 영화는 어떻게든 운명적인 부성애로 탈바꿈시키려고 했다. 심지어 오영제의 죽은 딸에 대한 집착과 뒤틀린 광기의 복수심까지도. 이를 위해 영화는 소설과 달리 ‘자살’로 그들의 비극성에 집중하면서 그들의 운명과 죄에 대한 동정과 용서의 마음까지 내비쳤다. 물에서 피비린내가 난다는 마을 여자와 무당의 기괴한 행동, 최현수의 우물에 대한 환각, 세령의 혼령과 서원의 만남 같은 초현실적, 주술적 분위기까지 집어넣어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유도했다. 정말 영화가 그것을 원했다면 아예 소설의 캐릭터와 정서까지 과감하게 버려야 했다.

소설 『7년의 밤』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최현수는 승환에게 이렇게 말한다. “타임머신이 그때로 나를 되돌려 준다고 해도, 난 아마 똑같은 짓을 저지를 걸세. 그렇게 충동적이고 어리석은 짐승이 바로 나라는 인간이야……. 자살도 생각했네. 매일, 매 순간. 실행하지 않은 건,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구원이기 때문이었어. 종교를 거부한 것도 비슷한 이유고. 내겐 신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게 할 자유가 있네. 내가 기다리는 건 구원이 아니라, 운명이 나를 놓아주는 때야.”

냉정하다. 그의 선택과 죄에 대한 어떤 참회나 구원도 없다. 용서와 화해의 감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죽은 것처럼 위장한 오영제의 서원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살해 계획 역시 부성애란 이름으로 동정을 받거나 용서받을 수 없다. 그의 집념과 복수심은 딸을 무자비하게 학대하면서 입버릇처럼 외친 “무슨 일이든 대가는 꼭 치르는 것”의 연장선상이다.

원작 대 영화 - 너의 이름은 / 글-이대현 영화평론가

그래서 그를 파멸시킬 덫을 놓는 일에 그의 아내 문하영도 기꺼이 동참한다. 영화는 그런 그녀까지 ‘자살’로 없애버렸다. 안승환의 무게와 그가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최현수와 문하영의 고백을 토대로 쓰는 액자소설도 무시했다. 오로지 두 아버지의 목숨 건 대결에만 무게를 두었다.

소설 『7년의 밤』의 바람은 살아남은 서원만이라도 아버지란 이름으로 저질러진 끔찍한 죄와 폭력과 복수의 지옥에서 벗어나도록 해주는 것이다. 승환이 고아가 된 서원이를 끝까지 지켜주고 보살피는 것도 단지 최현수의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그렇게 하지 못해 결국 세령이 죽은 것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 때문이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7년의 밤’을 밝히게 했는지 모른다.

영화도 부성애의 감동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면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앞뒤를 어설프게 바꾸고, 인물들의 비중을 멋대로 늘리거나 줄이고, 설명도 없이 현재와 과거, 과거의 과거를 산만하게 교차시켜 ‘운명의 7년’을 제대로 되짚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서원이 “왜 날 살렸어요. 수십 명 죽이고”라고 절규하자, 최현수가 “난, 네 아비니까”라고 말한다. 이 한마디로도 영화 <7년의 밤>이 소설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 알 것이다.

이대현_영화평론가. 1959년생저서 『15세 소년, 영화를 만나다』  『열일곱, 영화로 세상을 보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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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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