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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설의 처음과 끝

히가시노 게이고 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마음에게 마음이

그 소설의 처음과끝 : 하가시노 게이고 저<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그 소설의 처음과끝 : 하가시노 게이고 저<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그 소설의 처음과끝 : 하가시노 게이고 저<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소설의 처음

“그 폐가로 가자는 말을 처음 꺼낸 건 쇼타였다.
아주 괜찮은 헌 집이 있다고 했다.”

그 소설의 처음과끝 : 하가시노 게이고 저<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포토 스틸 컷

도둑질을 하고 도망치던 길 차가 고장 나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세 남자 쇼타, 아쓰야, 고헤이가 오래전 폐점한 나미야 잡화점 뒷문으로 은신을 위해 들어선다. 그들에게 우편함 투입구를 통해 날아든 기묘한 편지 한 통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남자 친구 곁에 머무는 것과 내년으로 다가온 올림픽을 위한 훈련에 매진하는 것 사이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를 묻는 편지의 수신인이 잡화점의 원주인 나미야 유지였음도 물론이고, 그가 이미 세상을 뜬 지 오래였음도 물론이다. 곧이어 밝혀지는 것은 ‘달 토끼’라는 이름의 발신자가 준비하던 그 대회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려는 의미로 미국과 일본 등이 참가를 거부했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었’다는 사실이다.

편지에 고민을 담아 우편함에 밀어 넣은 과거의 누군가와, 현재에서 어쩌다 그 편지들에 답장을 적어 상점 뒤편 우유 상자를 통해 과거로 전하게 된 세 좀도둑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그들이 긴 시간을 단번에 뛰어넘어 주고받은 무언가에 대한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다.

그들이 직접 만나는 것은 아닐지라도 편지를 매개로 시간을 초월해 마주하는 셈이므로 이것은 일종의 타임슬립(Time Slip) 소설이다. 분명 황당무계한 이야기임을 알면서도 읽는 동안 마음이 머무는 것은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 공평한 숙명적 한계 때문일 것이다. 미래에 대해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두 가지 정도가 전부라는 한계.

우리는, 어제를 살았더니 오늘이 오더라는 사실에서부터 대체로 내일은 있으리라는 걸 경험적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고, 한 생을 먼저 살다 떠난 수많은 이들로부터 그런 불안한 내일들의 끝에 필멸이 있으리라는 걸 귀납적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도 무한정 주어지지 않기에 우리는 그 시간들을 허비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곤 하지만, 지금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것인지를 그저 희미하게 짐작해보는 게 전부인 우리로서는 그 확실성과 불확실성 사이에서 거듭 길을 잃는 게 일이다.
그 소설의 처음과끝 : 하가시노 게이고 저<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포토 스틸 컷

그렇다면 세 사내의 편지가 과거의 누군가에게 길잡이가 되는 이야기인가. 아니, 이 말은 반만 맞다. 어렵사리 털어놓은 고민에 성심껏 답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펜을 놓지 못했던 그 옛날 나미야 유지와는 달리 그들은 얼마간 감정적이며 또한 얼마간 즉흥적이다. ‘달 토끼’의 첫 편지에 그들이 무어라 답했던가. 물론 그들이 미래를 미리 알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규모가 큰 운동회”에 지나지 않는 올림픽을 위해 “기껏해야 스포츠”(65쪽)에 힘을 쏟느라 남자 친구를 뒤로하겠다는 그 선택을 애초에 그들은 이해할 생각이 없다. 하여 출전 포기를 종용하는 답장을 보내는 데까지는 자연스러운 전개, 한데 그 이후는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쪽으로 향하여 끝내 그녀는 훈련을 택했다.

일본이 불참하여 결코 출전할 수 없게 될 그 올림픽을 위해 남자 친구를 홀로 병상에 남겨둔 채. 그렇다면 그들의 편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셈인가. 아니, 몇 통의 편지 끝에 이런 답장이 도착한 이상 이 말도 반만 맞다.

“나미야 씨, 저와 함께 고민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상담에 응해주신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스럽고 감사의 마음 가득합니다.
역시 이 일은 스스로 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될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 편지에는 답장을 해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몇 번이나 번거롭게 폐를 끼쳐서 정말 죄송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달 토끼 드림.

- p. 71

‘마음’, ‘진심’이라 불러도 좋을 무언가만이 그들 사이를 흐르는 시간의 강을 건넌다. 비록 투박하고 성급하게 쓰인 답장이었다 할지라도 거기 담긴 마음, 곧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함께 고민하며 답을 찾으려 애쓴 그 마음만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던 나미야 유지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 부족한 한 인간을 대하는 부족한 한 인간의 마음으로, 방황해본 이가 방황하게 될 이에게.

그러니 정작 그 답장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닐 터이다. 아니나 다를까, 가업인 생선가게를 물려받는 것과 제 꿈인 가수가 되기 위한 도전을 이어가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던 ‘생선 가게 뮤지션’에게 그들이 전한 것은 ‘답’이 아니다.

“그 결정이 옳은 것인지 어떤지, 미안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당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음악 외길을 걸어간 것은 절대로 쓸모 없는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노래에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당신이 만들어낸 음악은 틀림없이 오래오래 남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곤란하지만, 아무튼 틀림없는 얘기예요.
마지막까지 꼭 그걸 믿어주세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어야 합니다.
그 말밖에는 할 수가 없네요.”
나미야 잡화점 드림.

- p. 142~143

그 소설의 처음과끝 : 하가시노 게이고 저<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포토 스틸 컷

일찍이 나미야 유지가 말했듯 대부분의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다시금 그의 말을 빌리자면 결국 “중요한 건 본인의 마음가짐”(208쪽)인 것. 그러하기에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모두 다섯 장으로 복잡하게 구성된 이 소설의 인물들이 저도 모르는 사이 서로를 스치곤 했다는 설정은 단순히 미스터리적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나 이야기의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서 마련된 것만은 아니다. 모든 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희미한 무언가를 불가피하게 서로 주고받으며 네가 있고 내가 있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그렇듯 복잡한 구성으로 쓰였다.

나미야 유지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잡화점에 들러 미래로부터의 안부 편지를 받던 과거의 어느 날, 그의 조언을 따르지 않아 먼 길을 돌게 되었으나 그 또한 힘껏 살아온 제 인생이었음을 마침내 깨달은 ‘폴 레논’은 어떤 소식을 전해왔던가. “충고가 올바른 것이었다는 감사의 마음”(316쪽). 수신인에게 발신인이, 다시 발신인에게 수신인이, 그렇게 마음에게 마음이.

그 소설의 처음과끝 : 하가시노 게이고 저<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포토 스틸 컷

세 도둑들이 더는 도망치지 않겠다며 자수를 결심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치러야 할 죗값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면서, 앞으로는 제 삶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리라. 그 긴 밤 끝에 잡화점을 나선 그들에게 눈부신 햇빛과 함께 마지막 편지가 도착한다. 과거와 현재가 정말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하려 그들이 시험 삼아 보낸 빈 편지지에 대한 나미야 유지의 생애 마지막 답장이 그것이다.

소설을 따라 읽으며 오가는 마음들을 꾸준히 확인해온바 그 답장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를 짐작하기는 우리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뻔하다 싶은 결론일지 모르겠으나 본디 진리란 평범한 것, 도둑질에 이르기까지 그들도 힘겹게 겪어왔을 삶의 불확실성이 실은 무한한 가능성과 다를 바 없음을 전해주고자 하는 그 마음에 설득되지 않기도 우리에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설의 끝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상담 편지에 답장을 쓰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멋진 난문을 보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미야 잡화점 드림.

편지를 다 읽고 아쓰야는 고개를 들었다. 두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모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자신의 눈빛도 틀림없이 그럴 거라고 아쓰야는 생각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어떤 책?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2012년 발표한 작품으로, 그 해 일본 중앙공론문예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총 5개의 단락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오래된 잡화점을 배경으로, 기묘한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설정을 통해 그동안 작가 본인이 추구해온 인간 내면에 잠재한 선의에 대한 믿음을 작품 전반에 녹여내고 있다. 30년간 비어있던 나미야 잡화점에 어느 날 경찰의 눈을 피해 달아나던 삼인조 도둑이 숨어든다. 그러던 중 난데없이 나미야 잡화점 주인 앞으로 의문의 편지 한 통이 도착하고, 세 사람은 얼떨결에 그 편지를 읽어보고 만다. 처음에는 장난이라 생각했던 세 사람은 어느새 편지의 내용이 이끌려 답장을 해주기 시작하고, 이 편지가 과거와 현재 모두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전 세계 1,200만 부 판매 돌파라는 엄청난 기록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0년간 국내 최다 판매 소설, 6년 연속 역대 최장기 베스트셀러, 가장 사랑받은 해외소설 등으로 선정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바 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또 다른 문장들 곱씹어보기

 

아니, 몇 마디만 써 보내도 그쪽은 느낌이 크게 다를 거야. 내 얘기를 누가 들어주기만 해도 고마웠던 일, 자주 있었잖아? - p. 31

특별한 빛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누군가 알아봐준다. 가쓰로 스스로 알면서도 지금껏 외면해온 사실이다. 단순히 아직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왔지만 특별한 재능이 있다면 운 따위는 별로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어려운 길이니 그만두는 게 좋다. 기껏해야 그 정도였다. 자기 말에 책임을 지기가 싫어서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편지를 쓴 사람은 다르다. 말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 p. 133

설령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서른 통이나 이 궁리 저 궁리 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냐.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인간의 마음 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 p. 158~159

내가 몇 년째 상담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상담자 중에는 답장을 받은 뒤에 다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 답장 내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지. - p. 167

그날 이후로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원망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여정이 결코 평탄하지는 않았지만, 살아있어서 비로소 느끼는 아픔도 있다고 생각하며 하나하나 극복해왔습니다. - p.207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아닐까.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 - p. 269

하지만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아니, 그런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는 게 옳을 것이다. 친해지면 진짜 이름을 밝히고 싶어진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어진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한사코 혼자일 필요가 있었다. - p. 289

 

문학평론가 황현경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 2012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평론 <반격! 김사과>로 등단 / 현재 명지대, 서울예대, 추계예대 등에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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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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