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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길라잡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슬픈 사랑을 품은 길

서울 근대건축 문화 산책 제3편 : 경교장
서울 근대건축 문화 산책 제3편 : 경교장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에서 상념에 잠기다

서울 종로구 숭인동 일대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단종과 그의 부인 정순왕후에 대한 애절한 사연이 깃든 장소가 유난히 많다. 왕비에서 관비로 전락한 것도 모자라 너무 어린 나이에 남편까지 잃고, 남은 60여 년의 생을 홀로 조용히 살다간 정순왕후의 단종애사가 스민 곳들을 찾아 나섰다. 뿌연 미세먼지가 서울 하늘을 덮쳐 사방이 흐리고 뿌연 날, 숭인동 일대는 겨울이 더욱 성큼 더 다가와 있었다.

< 2005년, 사적 제465호로 지정된 경교장 외관  />

종로구 동대문 성곽공원에서 바라본 초겨울 서울 풍경. 종로구 숭인동 일대에는 단종과 정순왕후의 이야기가 깃든 장소들이 유난히 많다.

정순왕후가 단종을 그리워하며 평생을 살았던 곳을 가다

단종과 정순왕후 송씨의 이별길을 걷기에 앞서 정순왕후의 굴곡진 삶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해야겠다. 정순왕후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단종의 정비가 되었다가 18세에 단종과 이별하고, 부인으로 강등되어 평생을 혼자 살아가야 했던 불운한 인물이다. 단종은 세조 3년(1457)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도 복위사건으로 인해 영월로 유배되어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조선의 한 임금이 비운의 생을 마감하고, 그의 부인이 한 많은 세월을 살다 간 이야기는 우리 역사 속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정순왕후 유적지는 지하철 6호선 창신역 4번 출구에서 시작한다.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돌담길

정업원 터 전경. 안으로 들어가려면 청룡사를 통해야 한다. 정업원 터는 1972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빽빽이 들어선 오래된 가옥들 사이를 걸어 큰길로 접어드니 정업원 터가 나타났다. 이곳은 정순왕후가 궁에서 나와 단종의 명복을 빌며 평생을 살았던 곳이다. 입구가 굳게 잠겨 있는데,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청룡사를 통해야만 가능하다.

덕수궁과 정동의 옛 모습
덕수궁과 정동의 옛 모습

팔작지붕을 한 비각이 외롭게 서 있다(좌). 비각 현판에는 ‘앞산의 봉우리 뒤 언덕 바위여, 천만 년이나 영원하리(前峯後巖於千萬年)’라고 쓴 영조의 친필이 있다(우).

왕권을 빼앗은 세조는 정순왕후에게 거처를 제공해 주겠다고 했으나 왕후는 이를 거절하고 시녀 세 명과 함께 이곳에서 살았다. 훗날 조선 21대 임금 영조가 정순왕후가 살았던 곳임을 알게 되어 영조 47년(1771)에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라는 비석을 세워 표지로 삼도록 했다. 비석에는 정업원 옛 터 신묘년(영조 47) 9월 6일에 ‘눈물을 머금고 쓰다((淨業院舊基歲辛卯九月六日飮涕書)’라고 적혀 있으며, 비각 현판에는 ‘앞산의 봉우리 뒤 언덕 바위여, 천만 년이나 영원하리라(前峯後巖於千萬年)’라고 쓴 영조의 친필이 있다. 팔작지붕을 한 비각을 바라보며 열 일곱 시절부터 이곳에서 쓸쓸하게 살았을 정순왕후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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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율
사진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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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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