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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 후 이야기

대합실에서- 박솔뫼

기획특집 날개 그후이야기 05 날개, 이어쓰기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이상의 대표작 <날개 /> 6명의 작가가 모여 다양한 상상력으로 펼쳐 보았습니다. 이상의 소설에서 감동과 여운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5화 임현 작가기획특집 날개 그후이야기 05 날개, 이어쓰기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이상의 대표작 <날개 /> 6명의 작가가 모여 다양한 상상력으로 펼쳐 보았습니다. 이상의 소설에서 감동과 여운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5화 임현 작가
그런 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 눈이 부신, 정말로 눈이 부신 거리를 걸을 때 많은 것이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을.

과거의 내가—과거의 다른 이들이—다른 시간의 모든 이들이 반복되고 있다고. 이 어지러운 기분은 나의 것이 아니고, 어지러웠던 많은 사람들의 모든 순간들의 반복이라고. 나의 손톱마저 꼭 그 반복처럼 여겨지고야 마는 것이다. 그런 것은 정말 뭐라고 해야 할까. 뭐라고 이름 붙이든 간에 우리는, 모든 시간의 사람들은 또 어딘가의 거리를 걷고 있을 것이다. 아주 우스운 것을 여전히 반복하는지 모르는 채로 다시 하고 있을 것이다.

서울이 여전히 경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우리는 “식민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라고 말하는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그 사람들은 무엇을 보며 서울을 걸을까, 동시에 서울에서 무엇을 보는 걸까. 등 뒤에서 훔쳐보려고 하지만 이제는 헤어져 버린 사람들. 신세계백화점 앞을 지날 때마다 이상한 겹겹의 시간이 흐르는 것 같다고 흐르다 멈추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서울이 여전히 경성이라고 생각하는 쪽은 아닌데 여기가 생각과는 다르다고는 생각해. 생각과는 다르니 착각을 하지 말고 지나는 사람들을 잘 살펴본다.

신세계백화점을 지나 남대문으로 가야 할까. 등 뒤로 백화점을 두고 명동으로 가야 할까. 회현 지하상가를 걸으면 이곳을 지났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죽은 사람들도 있지만 어딘가에서는 어떤 순간으로, 기분으로 그냥 지나치게 될 것이다. 지금 걷는 사람들이 보이고 이전에 걸었던 사람들이 느껴지고 스쳐가는 낡은 냄새들은 누구의 것일까. 아무 존재처럼 휙 하고 천천히 흐르는 사람들. 어째서?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니? 물어보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에게도 대합실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틀릴 리가 없는 커다란 시계를 바라보며 초침을 따라 세고 한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아무에게 시간을 나눠줄 수 있는 그런 대합실이 필요한데.

“헌데 당신 정말 60초를 셀 수 있어?”

나는 틀릴 리 없는 커다란 시계를 보다 고개를 떨구는 사람을 향해 묻는다. 60초, 그것이 1분인데 1분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60개를 셀 수 있어? 당신은 못 세지. 어지러운 사람들, 구실을 못하는 사람들, 어떻게 방으로 돌아갈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마치 내 옆을 지나가는 것처럼 지하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 지하는 어쩌면 끝없이? 그럴지도 라고 막연히 설렌 기분으로 — 착각하며 정신을 차리고 60개를 못 세는 사람들.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대답을 했다.

“당신은 못 세지 못 세.”

라고 혀를 차면서 대답을 했다. 그런데 보통 사람도 1시간을 똑바로 의식하며 1초, 2초, 60초를 한 번 셌어. 60초를 17번 셌어. 이제 43번 남았어. 분명히 의식한 60초를 어떻게 다시 60번 이해할 수 있을까. 보통 사람도 그런 것은 잘 못해. 어디서 제대로 된 사람이 소곤소곤 알려주고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다가 길을 걷는 사람들을 다시 보고, 걷는 사람들을 보는 내가 멀리서 보이다가 보이지 않다가, 지하는 정말로 끝없이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내만 생각하고 아내만 의식하고 아내만 사랑하는 그 사람을 쫓아다니는 사람처럼, 사랑하게 된 것처럼 그 사람을 따라다니며 놀리고 우스워한다.

그런데 60초를 17번 다시 셀 수 있겠어? 당신은 못 센다고.

회현 지하상가를 걷다가 다시 명동 방향으로 빠져나가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멀리 오래된 여자 대학교가 얼핏 보였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커피를 시키고 자리로 향해 가다 옆 자리에 앉아 멍하게 눈앞을 보고 있는 사람의 어깨를 일부러 치고 사과를 한다.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모두들 마치 목적지가 있다는 듯이 갈 곳을 아는 것처럼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갈 곳을 모르는 사람들을 종종 나는 알 수 있었다. 같은 길을 7번 반복하는 사람. 처음에는 빠르게 그다음에는 천천히 다음에는 간판을 마음속으로 따라 읽으며 그리고는 나무에 기대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숫자를 세어보는 사람들을 알 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목적지가 있듯이 걷는 사람 바빠 보이는 사람 친구에게 손을 흔들며 맞은편으로 다가가는 사람 모든 갈 곳 있어 보이는 사람들. 하지만 모퉁이를 돌면 어디야 어디야 속으로 어지러운 사람들. 경성의 미쓰코시 백화점은 본 일이 없고 신세계백화점은 잘 아는데 신세계백화점 앞을 지나면 이상하게 눈앞을 흐르는 뭔가를 그게 뭐지 멈추게 되고. 그런데 긴자의 미쓰코시 백화점을 지났을 때……. 동경의 미쓰코시 백화점은 여러 개지만 어느 곳도 당연히 신세계백화점과 비슷하지는 않았다. 긴자역 A6번 출구에 대합실이라는 카페가 있는데 나는 그곳이 모두의 대합실처럼 여겨졌다. 목적 없는 모든 사람, 어지러운 사람, 그리고 계속 반복하는 사람과 시간의 대합실. 나는 나란히 앉은 사람에게 지폐를 건넨다. 돈을 받아 나는 돈이 많아.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고 우리는 나란히 커피를 마시며 마치 갈 곳이 있는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센다. 너무 많이 쏟아져 번번이 놓치게 되는 많은 사람들을 틀리고 실패하며 다시 센다. 아냐 아냐 숫자를 금세 포기하고 다시 하나 둘 세다가 사람들은 쏟아지고.

“다시 돈 내놔.”

그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떨구다 운다.

“내놓으라고.”

당신은 주머니를 뒤져 지폐를 건네고 나는 받은 돈을 지갑에 넣었다가 다시 여러 장을 꺼내준다.

“받아. 더 주는 거야. 나는 돈이 많아.”

눈물을 다 닦지 못한 당신은 웃으며 돈을 주머니에 넣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커피는 쓰고 맛있고 비가 오는가 본데 어째서 그것을 알 수 있지? 커피는 더 맛있어졌고 사람들은 젖은 얼굴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미처 챙기지 못한 우산들이 집에서 한가하게 놀고 있을 것이다. 마치 우리들처럼 말이다. 왜인지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을 커피를 마시며 참았다. 억누를 필요가 있을까? 멱살은 내일 잡아도 모레 잡아도 되니까, 오늘은 오늘만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하니까 그런 생각으로 커피를 마시며 다른 생각을 하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또 쏟아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내일은 내일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내일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기쁜 생각이 들었다.기획특집 날개 그후이야기 05 날개, 이어쓰기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이상의 대표작 <날개 /> 6명의 작가가 모여 다양한 상상력으로 펼쳐 보았습니다. 이상의 소설에서 감동과 여운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5화 임현 작가

내가 방으로 간다면 말야. 이불은 대바늘로 바느질한 두꺼운 요 위에 깔려있고요. 그 역시 대바늘로 바느질한 두꺼운 이불이었습니다. 나는 두꺼운 요 위에 두꺼운 이불을 덮고 몸을 웅크린 당신 옆에 누울 텐데. 누가사람 같은지, 누가 공기 같은지 둘 다 빈껍데기 같아서 이불을 들추면 그 힘에 모두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아무튼 웅크린 당신 옆에 누워서 생각한다. 빗자루 냄새가 나는 이불이다. 나는 박물관을 생각했다. 우리가약을 먹고 약을 먹고 또 먹고 잠만 자고 또 자다가 그대로 보존되어 우리의 방이 통째로 국립중앙박물관 안에 있다면 말이에요, 우리의 이름표는 무엇일지에 관해 생각했다. 신세계백화점 출토 화석 같은 것은 아니겠지.그런 것은 정말 싫었다.

지금의 모습으로 모든 것을 반복하고 싶었다. 내 옆의 남자는 여전히 마르고 버석하고 살아있고 냄새나고 우습고 그 상태 그대로 보존되자. 그러나 이미 어느샌가 당신도 아내도 사라진 방에서 나는 이불에 몸을 웅크리고조금 오래 잠들고 싶다고 잠깐 생각했다. 옆집의 누군가는 뭐라고 말을 하며 셈을 했고 반대편 옆집의 누군가는 도마에 파를 썰었다. 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게 파인지 알 수 있었을까. 하지만 정말 파였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이웃에서 흘러 들어오는 소리를 구분하고 이해했다. 나는 약을 먹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멍한 기분이고 30시간쯤 잔 기분이고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다가 더 이상 어려운것, 복잡하고 까다로운 것, 예를 들어 60초를 집중하여 세는 것에 자신이 없는 기분이 든다는 것은 역시 약을 먹은 것일까. 나는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흰색 잠옷을 입고 있는데 잠옷도 이불도 공기도 춥지도,덥지도 않았다.

조금 전에 나는 무척 부자였고, 지금 나는 대합실에서 늘 언제나 부자인 채로 살고 있으며, 당신은 내가 준 돈으로 또 어디를 돌아다니고 있는 거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잠이 왔고, 내가 우리가 이대로 보존된다면 이습기 없는 이불 속에서 그대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그대로 그렇다면 나에게는 무슨 이름이 달리는 거야? 나는 길가는 사람, 길가는 사람을 보는 사람, 거리를 걷는 사람, 거리를 걷는 사람의 숫자를 세는 사람.

대합실 앞으로 여러 날, 여러 밤 나는 커피를 마시고 옆자리에는 그 사람이 있기도 했다 없기도 했고 대합실 안에 나만 홀로 사람들을 세고, 60초를 세고, 손가락의 주름과 창가의 빗방울을 세기도 했다. 대합실의주인은 있는 듯이 없는 듯이 필요한 것을 꺼내주었다. 창 앞으로 그 사람이 지나가기도 했다. 나는 겁에 질린 눈을 하고 사람들 속을 빠르게 빠져나가는 익숙한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챙긴사람들은 곧 그것을 잃어버릴 것처럼 손에 힘을 뺀 채로 우산을 흔들며 걸어갔다. 이불은 건조하고 빳빳했는데 머리의 위치를 바꾸면, 그러니까 발이 있던 자리로 머리를 누이면 건너편에서 나는 화장품 향기가 무거운공기가 되어 서서히 나의 누운 자리로 흘러 들어왔다. 긴자의 대합실에 앉아 머리 위 어딘가에 걷고 걷다보면 나올 미쓰코시 긴자점을 생각하다가, 걷고 걷다 보면 꽤 많이 걷다 보면 여러 개의 미쓰코시 백화점이가로등처럼 머리 위를 밝히겠지 생각했다. 우리는 만난 적이 있고, 미쓰코시 백화점과 나는, 나와 그 남자는 이웃의 목소리와 이야기는 다시 만나고 있다. 날개가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싸한 일이었고 나는날개가 필요 없는 지하가 지하상가의 쭉 벋은 길이야말로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것은 정말 뭐라고 해야 할까. 반복되는 이것을.

우리는 건조한 이불 안에 나란히 누워 이불이 버석거리는 소리를 숨을 죽인 채 듣고 있고 나란히 앉아 대합실의 커피를 17번 함께 마시고 있으며 젖은 머리카락의 행인들은 웃으며 맞은편을 향해 손을 흔드는데.

“내가 줄게.”
“네.”
“이걸 받아.”
“네.”

저녁 10시에서 11시 우리는 시간을 기다리느라 지치고, 시간을 끝없이 의식하고,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고, 너는 나의 돈을 받고, 그 돈으로 커피를 마시고, 그 돈으로 돈을 주는 기분을 느끼고. 머리 위어딘가에서 어디 멀리에서 누군가에게 날개가 생겼다고. 그건 정말 그럴듯한 일이었다고 당신은 지폐를 소중히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정말로 뭐라고 해야 할까. 회현지하상가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기분으로걷는 사람.

설레고 있다. 내가 모르는 채로 끝없을 이런 시간들과 순간들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빗방울을 세는 이런 영원한 시간들은.

이런 반복되는 것을 뭐라고 해야 할까.
김태용 작가 사진

〃 작가소개 〃

박솔뫼 소설가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 『겨울의 눈빛』 『사랑하는 개』 『그럼 무얼 부르지』,
장편소설 『을』 『백 행을 쓰고 싶다』 『도시의 시간』 『머리부터 천천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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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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