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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연재소설

<작은 동네> 제 21화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21화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21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 우리는 2층 양옥집의 1층으로 이사를 갔다. 내 생애 세 번째 이사인 셈이었다. 2층에는 집주인이 살았는데 1층 마당에 커다란 개를 묶어놓고 키웠다. 그즈음의 나는 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 우리가 떠나온 작은 동네에 살던 사람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개를 키운다는 그 말은 아마 사실이 아닐 거라고, 그저 개를 키우고 싶어 했던 어린 나의 소망을 거절하려는 어머니 나름의 방식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가족을 잃은 그들—이 슬픔을 극복할 방법이 있었기를, 그리고 그게 다른 것이 아닌 개를 키우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어머니는 서울로 이사를 온 직후에는 동네 사람들과 특별히 교류를 하거나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열다섯 살이 된 이후로는 간간히 직장에서 사귄 동료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가 있었다. 여전히 여러 종류의 신문을 구독했고 매일 밤 뉴스 보는 걸 빼먹지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어머니는 더 이상 나와 함께 등하교를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면 불안해했고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을 통제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내가 술을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갈 일이 있으면 내가 귀가할 때까지 잠에 들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혹시 다른 대학생들에게 휩쓸려 데모나 집회 같은 것에 참여할까 봐 걱정을 했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이미 그런 식의 학생회 활동이 완전히 힘을 잃은 이후였는데도 말이다. 물론 나는 그런 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내가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어머니의 그 매정한 말—울어도 소용없어—은 내게 한 게 아니라, 어쩌면 어머니 자신에게 한 말일지도 모르겠다고.

새벽까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던 나는 결국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화장대 의자에 걸려 있던 크림색 카디건을 걸친 후, 우유 한 잔을 들고 남편의 서재로 들어갔다. 「또 다른 여자」를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인터넷 검색 창에 ‘윤이소’라고 친다. —역시—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특별한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소나무 숲 별장의 그녀가 떠올랐다. 아마도 요 며칠 동안 그녀에 대한 기억을 많이 떠올렸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 여자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놀라울 정도로 그랬다. 대신 유튜브로 들어가서 그 여자의 이름을 검색해보기로 했다. 기사를 찾을 때보다도 더 기대감 없이 한 행동이었는데, 유튜브에는 그녀의 무대 영상이 몇 개 업로드되어 있었다. 너무 오래된 영상이라 화질이 좋지 않았고 재생 시간도 짧았지만, 나는 그 정도 영상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무척 놀라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헤드폰을 착용하고 ‘1987년 가요톱텐: 인형의 놀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클릭했다.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21화-1

영상 속 그녀는 목 부분부터 가슴 부분까지 시스루 소재로 된 검정색 도트 무늬 블라우스와 복숭아뼈 바로 위까지 덮는 하이웨이스트 청바지를 입고 빨간색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망사 양말을 신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반만 묶었는데 너무 꽉 묶어서 양쪽 눈이 올라가 있었다. 노래는 미디움 템포의 디스코 곡이었다. 특별한 건 아니었고 아마도 그 당시 유행했던 일본 팝을 흉내 낸 스타일 같았다. 냉정하게 말해서 그녀가 노래에 굉장히 재능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목소리에는 비음이 섞여 있었는데, 고음으로 올라가면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소리와 춤은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구석이 있었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 관중석을 향하는 손짓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그녀가 그 순간 가장 바랐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무대 위에서의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될 수 있으면 그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하지만 그녀에게 허용된 시간은 고작 3분 남짓이고 시간은 쉴 새 없이 흘러가기만 한다. 시간은 과거로부터 미래를 향해 흘러가는 것이고, 그 어떤 수사로도 그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나는 발랄한 표정을 짓고 경쾌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서 알 수 없는 애수가 비춰진다고 느낀다. 잘 모르겠다.

이건 온당한 판단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녀는 정말로 그저 행복한 마음으로 무대를 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내가 그녀의 마지막 시절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끼워 맞추어서 생각하는 걸까?

나는 그녀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인형의 놀이를 지켜봤어 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놀이야 우리는 시간을 돌아 껑충 뛰어서 다시 만날 거야 인형의 놀이처럼.”

문득, 내 눈앞에 겨울을 지나고 있던 열 살짜리 내가 떠오른다. 피가 덕지덕지 묻은, 무릎 부분이 찢어진 바지를 입고 얼굴은 자잘한 상처투성이인 어린 나는 소나무 숲 별장 거실의 화려하고 커다란 소파 위에 앉아 있다. 그녀는 커다란 숄을 두르고 내 앞에 서서 양팔을 허리에 댄 채 생각에 잠긴 듯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잠깐만 기다려.”

거실에 혼자 남겨진 나는 창문을 통해 눈이 내리는 밖을 바라본다. 숄을 두른 채 그녀는 눈을 맞으며 도끼로 나무를 내리쳐서 장작을 만들고 있다. 그녀가 도끼를 든 양팔을 아무리 들어 올려도 숄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캔 음료의 뚜껑을 따는 정도의 힘만 들이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장작은 정확하게 두 동강이 난다. 나는 그녀가 장작을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는지 지켜본다.

잠시 후 그녀는 장작을 안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그녀에게서는 방금까지 장작을 캔 사람의 흔적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얼굴은 깨끗하고, 눈을 맞은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녀는 나를 보고 한 번 싱긋 웃은 후 벽난로 속에 장작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둔다. 성냥을 성냥갑에 한 번 그은 후, 장작 나무 사이로 던진다. 순식간에 불길이 솟아오르고 그녀의 얼굴에 그림자가 진다. 나는 넋을 잃고 그 불길을 바라본다. 그건 누군가를 해칠 만한 불길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슬픔이나 고통을 줄 만한 불길이 아니다. 나와 그녀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불길이다. 열 살짜리 나는 그렇게 되뇐다. 그녀는 숄을 벗는다. 숄이 그녀의 다리 아래로 스르르 떨어진다. 그녀는 벽난로 위쪽 벽에 걸려 있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한다.

“나는 이렇게 어른이 되고 말았어.”

나는 거울 속 그녀를 보려고 애쓰지만 거울에 비친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나는 시선을 내려 벽난로 안을 바라본다. 아주 잠시 한눈을 팔았을 뿐인데, 그사이 불길은 꺼져 있고 벽난로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추위를 느낀다.

“당신이 시간을 속일 수 있다면 거기에서 무얼 볼 수 있을 것 같니? 의미 없는 행동 의미 없는 사랑 의미 없는 열망 아아아 인형의 놀이.”

그녀의 비음 섞인 고음이 내 귀를 파고들었다. 나는 내가 앉아 있는 남편의 서재를 둘러본다. 남편의 스크랩북들.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든 나는 헤드폰을 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남편이 혼자 잠들어 있는 침실로 갔다. 그런 후 침실 불을 켜고 남편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남편은 짜증과 놀라움이 섞인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누군가에게 불시에 얻어맞은 듯한 표정으로.

“일어나봐.”

“뭐?”

남편은 여전히 누운 채로 이마를 찌푸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고통받은 사람을 그냥 두었어. 그녀를 도와야 했는데 그냥 두었어.”

내가 말하자 그는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누구? 그게 무슨 소리야?”

“윤이소 말이야.”

그 이름이 나오자 그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상반신을 일으켜 앉았다.

“당신이 얼마나 거지같이 굴고 있는지 알아? 대체 왜 그래? 대체 내가 얼마큼 당신을 참아줘야 해?”

“나를 참아준다고? 참는 건 당신이 아니라 나야.”

나는 그렇게 말을 하고 깜짝 놀랐다. 그런 말을 입 밖에 내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남편이 내게 물었다.

“당신이 뭘 참는데?”

내가 뭘 참고 있냐고? 나는 뭘 참고 있는 걸까? 어머니는 항상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가 가진 삶을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말했었다. 그냥 웃어버려, 다른 사람들과 갈등할 일을 만들지 마. 그 동네를 생각해보렴, 우리 모두 고통을 받는 거야. 그걸 생각해봐. 너는 충분히 행복한 거야.
운이 좋은 거라고.

그는 발로 거칠게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 밖으로 나왔다. 그런 후 거실로 나가서 집 안의 등이란 등은 모조리 다 켜고 거실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집 안이 너무 환하고, 그 환한 빛 아래에 서 있는 남편의 얼굴을 봐야 하는 게 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남편은 팔짱을 낀 채 침실 문간에 기대서서,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 손보미 소설가
  • 〃 작가소개 〃

    손보미소설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담요」가 당선 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그들에게 린디합을』,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이 있다. 2012년 젊은작가상 대상, 2013~2015년 젊은작가상에 선정되었으며, 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제21회 김준성문학상, 제25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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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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