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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예술의 풍경

우리가 아는 그 '가족'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근대 예술의 풍경 우리가 아는 그 ‘가족’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근대 예술의 풍경 우리가 아는 그 ‘가족’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근대 예술의 풍경 우리가 아는 그 ‘가족’은 어떻게 생겨났을까?-1
가족계획 우표 / 가족계획 포스터

<근대적인 삶으로의 전환>

1960년대까지 한국의 평범한 여성들은 대체로 예닐곱 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살았다. 농업사회에서 자식은 그 자체로 노동력이고 자산이자 노후를 의지할 대상이었다. 그러므로 다산은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태어난 자식이 모두 건강하게 장성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갓 낳은 아기나 어린 자식을 일찍 잃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1972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연구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분만 경험이 있는 2,083명의 농촌여성 중 96.3%가 집에서 아이를 출산했고, 탯줄을 소독하지 않은 가위로 자른 경우가 40%, 낫으로 자른 경우가 20%였다. 분만 당시 신생아를 시멘트포에 받은 경우가 21%, 비닐포에 받은 경우가 28%, 맨바닥에 분만한 경우가 15%였다. 자녀의 사망을 한 번 이상 경험한 여성은 20.5%였다.

자식을 여럿 두는 것-특히 아들을 낳는 일-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으나, 곤궁한 삶에 입 하나를 더하는 일은 재앙이기도 했다. 출산을 조절할 대책을 갖지 못한 여성들은 한약재를 복용하거나 간장, 엿기름을 먹기도 하고, 부러 무거운 것을 든다거나 높은 데서 뛰어내리고 언덕에서 굴러떨어지는 식의 자기 학대를 통해 낙태를 시도했다. 병원이 가까운 도시의 여성들은 병원을 찾아 낙태 시술을 받기도 했다.

태어난 자식을 엎어놓거나 얼굴에 걸레를 덮어두고 혹은 젖을 주지 않는 방식, 그러니까 영유아의 살해나 기아(棄兒) 등의 방법도 넓게 보아 낙태의 연장상에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이렇게 사망하는 아이들은 대개 여자아이였다. 이것은 20세기 중반 한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여러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영유아기 성별 사망률의 확연한 차이는 성별에 대한 선호가 이러한 행위의 중요한 기제였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자식을 여섯씩 낳던 여성들이 둘만 낳아 기르게 된 것은 얼마나 극적인 변화인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 ‘근대적인 삶’으로의 전환은 이렇게 일어났다. 게다가 한국에서 이 변화는 불과 20년 만에 일어났다. 한 여성이 평생 낳게 되는 자녀수를 추정하는 수치로 흔히 언급되는 합계출산율은 식민지 시기에서 1960년대 초까지 대체로 6명이 넘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의미 있는 변화는 6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해서 70년대 전반에 4명 언저리로 감소했고, 그로부터 10년 만인 80년대 초에는 2명 아래로 떨어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지 자녀의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으레 임신이 되면 낳아서 키워야 했던 삶, 재생산의 자연적 질서와 결별함을 뜻했다. 사람들은 이제 임신과 출산을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자녀를 언제 낳을지, 몇 명을 어떤 터울로 낳을지 계획하게 되었다는 것은 삶 자체를 계획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를 기술적으로 가능케 한 것은 물론 근대적 피임술이었다. 1960년대 가족계획사업이 국책사업으로 시행되면서 근대적 피임술은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 콘돔이나 살정제 같은 재래식 피임법부터 정관절제술, 자궁내장치, 먹는 피임약, 미니랩이나 복강경 등 여성불임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피임술이 가족계획사업의 진행 과정에서 도입되고 새로 개발되고 채택되었다.

각각의 피임술은 상이한 행정장치와 인력을 필요로 했다. 1962년 전국의 100개 시·군·구 보건소에 가족계획상담소가 병설되기 시작했고, 조산원과 간호원들이 훈련을 받아 보건소 요원으로 배치되었으며 벽지에 보건소가 증설되었다. 1964년부터는 전국의 읍·면 단위로 가족계획 계몽원이 배치되었고, 시·도 및 시·군 단위 보건소를 경유해 피임방법별 목표량을 할당 받았다. 가족계획 계몽원들은 가가호호 돌아다니며 피임술을 보급했다. 해외 원조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시·군 보건소 단위에 배치된 이동진료 차량에 시술인력이 탑승해서 산간벽지를 돌며 자궁 내 장치를 시술하기도 했다.

피임술을 효과적으로 보급할 방법을 찾기 위해 가족계획사업 초반부터 해외의 자금을 지원받아 대규모의 실증연구들이 진행되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임신하고 출산하는지, 어떤 경우에 더 쉽게 피임하는지, 어떤 경우에 아이를 더 낳고 싶어 하거나 덜 낳고 싶어 하는지, 피임에 관한 문제를 누구와 왜, 어떻게 의논하는지, 피임의 지식은 어떻게 얻으며 피임을 어떻게 결정해서 어디서 시술받는지, 어떤 방식으로 낙태하는지와 같은 문제들이 대대적으로 분석되기 시작했다.

훗날 새마을부녀회의 전신이 될 가족계획어머니회도 그와 같은 연구결과에 따라 추진된 것이었다. 가족계획어머니회는 1968년 먹는 피임약이 도입되면서 약제를 지속적으로 보급하고 복용을 서로 독려하는 가임 여성의 연결망을 만들기 위해 전국의 법정 리·동 단위에 조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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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계획계몽원이 피임법을 안내하는 모습

<산업자본주의 사회의 시작>

피임술 보급은 이처럼 간단치 않은 과정이었고, 근대적인 통치 기구의 확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피임술 보급이 근대적 출산조절을 결코 자동적으로 가져오지는 않는다. 사회과학자들은 자녀수의 감소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두고 오래도록 논쟁해왔지만, 피임술이 보급된다고 해서 출산율이 저절로 낮아지지 않는 건 당연하다. 자녀수의 감소는 곧 자녀의 의미가 현저히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자녀의 의미는 단지 계몽이나 교육을 통해서 변화하지 않는다. 자녀의 의미는 사회경제적 구조, 가족 결속의 토대, 세대 간 계약의 성격에 따라 형성되는 역사적 구성물이다. 그러므로 농촌경제와 산업화된 사회에서 자녀가 가지는 의미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런 점에서, 가족계획사업이 경제개발계획의 일부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근대적 피임술을 활용해서 출산조절을 실천하게 만든 핵심적 요소는 근대 산업자본주의였다.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녀는 오랜 기간에 걸쳐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야 비로소 성인 단계로 진입하여 가구경제에 기여하게 되는 존재다. 성인기에 도달할 때까지 어떤 경제적 기여도 없이 오직 부양의 대상일 뿐인 자녀를 위하여 임금노동에 헌신하는 것은 결혼한 남성들의 책임과 긍지가 되었다.

이와 동시에 가계지출을 관리하고 합리적으로 소비하며 적은 수의 자녀를 적절한 시기에 출산하고 정성을 다해 양육하는, 이전까지 존재한 적이 없었던 역사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삶의 양식이 출현했다. 많은 여성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배우자를 위해 헌신하고 자녀를 훌륭하게 교육시키는 것, 즉 ‘주부’로 사는 것을 꿈꾸게 되었다. 전업주부의 이념형은 산업화시기 여성의 임금노동을 언제나 잠정적인 것으로 의미화 했다. 많은 여성들이 전업주부의 삶을 실현하길 고대하며 고된 공장노동의 고통을 견뎠다.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해서 그 사랑의 결실로 얻은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한다는 새로운 종류의 정서는 새롭게 등장한 가족 모델을 휩싸게 되었다. 이 새로운 가족은 부부의 관계, 그리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이전과는 다르게 변모시켰다. 특히 1970년대 둘 낳기 운동과 함께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는 가족계획의 상징처럼 각인되었고, 실제로 부부와 2명의 자녀로 구성된 가족은 ‘정상가족’의 표준적인 상(像)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적 가족의 모습이다.

1990년대 말 혹은 2000년대 초까지 이 정상가족의 이념형은 상당기간 동안 사람들의 삶을 사로잡았다. 특정한 시대에, 실상 특정한 집단에만 허락되었던 그 가족의 모델은 이제 조각조각 부서지고 있다.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는 정책을 아무리 많이 실시해도 아무리 ‘건강가정’을 외치고 고령사회의 위험을 외쳐도 그때 그 가족이 지나간 역사적 풍경이 되었다는 사실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달라진 가족을 이제는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한다.

글ㆍ사진 / 조은주_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 교수

저서 『가족과 통치:인구는 어떻게 정치의 문제가 되었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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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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