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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혼밥이 망설여지시나요?

디쉬인사이드 아직도 혼밥이 망설여지시나요? in 두 교황, 고동한 미식가, 심야식당
디쉬인사이드아직도 혼밥이 망설여지시나요? in 두 교황, 고동한 미식가, 심야식당

과도한 업무와 각종 스트레스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시달리며 사는 현대인에게 주는
지혜와 같은 잠언,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여기에 들어맞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혼자 먹는 밥 이야기다.

혼밥이 늘어가는 세상

몇 년 전 혼밥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는가 싶더니 기성 언론에서도 시민권을 획득해가는 것 같다. 아직 중앙 일간지는 따옴표를 사용하여 ‘혼밥’이라고 표기하는 곳이 다수이지만 SNS나 인터넷 매체의 영향력을 고려해 보면 이 낱말이 따옴표의 굴레를 벗어날 날이 머지않은 것처럼 보이니, 현재 신분은 시민권을 따기 전 영주권 정도는 나와있는 정도가 아닌가 한다.

혼밥이라는 말의 기저에는 ‘바람직한 식사’가 아니라는 뜻이 깔려있는 듯 하다. 밥은 여럿이 먹는게 ‘정상’이고 피치못할 사정으로 혼자 먹어야하는 식사는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라도 되는 듯 한게 그동안의 사회적 풍토였다. 한국어로 식구라는 말이 ‘밥을 먹는 입’, 즉 함께 식사를 하는 구성원을 뜻한다는데서 그 어원을 찾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는 혼자 먹는 밥을 ‘고쇼쿠(孤食)’라는 말을 썼는데 혼자라는 뜻을 넘어서 외로운, 고독한, 이런 뉘앙스가 풍기는 단어이다. 요즈음에 와서 중립적인 뜻을 찾자는 의도에서인지 ‘히토리고항(ひとりご飯:일인식사)’라는 말도 함께 사용되고 있다. 중국어에서도 獨自吃飯(일인식사), 獨吃族(혼밥족)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는데 후자는 한국 영화 드라마를 보면서 생겨난 단어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혼자 식사를 해야 하는 경우가 옛날에 비해 엄청 늘어났으므로, 피치못해 혼자 먹어야 하는 식사가 아니라 혼자 먹는 것을 적극적으로 즐긴다는 마음가짐과 또 그걸 즐기는 각종 노하우를 습득하는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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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식구라는 구성원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게 된데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동력 분배와 자원 소비의 효율을 극대화하는데 그 주목적이 있었다. 식재료를 각종 방식으로 조리하여 먹을만한 음식으로 만드는데는 많은 노동력이 들어갔고 그걸 담당하는 인력을 우리말로는 주부라고 했다. 식사준비를 안해도 되는 나머지 구성원들은 아주 먼 옛날에는 수렵과 채취를, 근대에 와서는 밭일을 하든, 직장에서 임금을 받는 일을 하든, 생활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데 몰두하였던 것이다. 식사를 하는 행위는 생존을 위한 영양분 보급이라 본능적으로 많은 정신적 보상도 따른다. 먹을 때 많이 즐겁고 행복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즐거움을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좋은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사회적 기능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크게 변했다. 전통적 대가족이 사라진지 벌써 오래고, 핵가족이라는 말이 생겨나는가 했더니 얼마 안가서 1인 세대가 2인 이상의 세대수를 넘어설거라는 예측을 내놓은 학자들도 있다. 나도 이런 현상을 안타깝고 쓸쓸하다고 느끼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이미 낡은 구세대라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엔가 꽤나 유명한 인사가 ‘가족들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냉장고부터 없애라’는 도발적인 글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발표 직후부터 꽤나 비판을 받았는데, 나도 글쓴이의 의도는 알겠는데 너무 현실과 동떨어져 좀 철이 안든 이야기라고 비난받아도 어쩔 수 없겠다고 생각했었다. 우리나라 가정에 냉장고가 보급되기 시작한건 불과 50년이 안된다. 그전에는 모두 냉장고가 없이 살았다. 가장 중요한 부식이었던 김치만 해도 그렇다. 김장은 늦가을에 담가서 땅에다 묻고 겨우내 먹다가 봄이 오면서 날이 따뜻해지면 신김치로 찌개도 해먹고 그랬다. 군내나는 김치를 버리지 않고 씻어서 만두속도 만들고, 전으로도 부쳐먹고, 비지찌개에도 넣는 등 이것저것 해먹는 것도 각 가정 주부들의 지혜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봄부터 다시 가을이 올 때까지 집집마다 풋김치, 열무김치, 나박김치, 깍두기, 오이소박이를 며칠마다 한번씩 담가먹었다. 냉장고가 도입되면서 모든 주부들이 열광했던 건 김치가 빨리 시어버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당시 주부들은 오후 늦은 시각이면 거의 매일 저녁거리 장만을 하러 장을 보러다녔다. 나는 어려서 엄마를 졸졸 따라다녔기에 시장에 얽힌 기억이 참 많은데 다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때는 시장 초입 청과물상에서 풍겨나오는 과일향으로 계절이 바뀌는걸 알았고, 나물 푸성귀도 다 제철이 있어서 상인들이 외치는 달래 냉이가 나왔어요, 오이가 시원합니다, 가지가 싱싱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며 계절이 지나가는 걸 실감하였다. 철마다 주종목이 바뀌는 생선을 사거나 모처럼 여유가 있어 소고기, 돼지고기를 사도 얼른 해먹어야 했다. 하긴 다들 대가족이라 상에 올라가면 뚝딱 없어지니 모자라는 걱정은 해도 남는 걱정은 모르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때는 매일 장을 봐서 하루 세 끼 내지 두 끼는 조리를 하는데 한 사람, 또는 그 이상의 구성원의 시간과 노동이 온전히 들어갔기에 냉장고 없이도 성립이 되는 생활상이었다. 가족의 구성원은 적어도 5,6인 이상이어서 식재료의 구매와 소비가 그때그때 완결이 되는 구조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젠 가족 구성원도 줄어들고, 1인 세대도 엄청 늘었고, 외식도 매우 잦은 시대가 되었다. 가사에만 전념하는 전업주부의 봉사와 희생 위에 각 가정의 식생활이 돌아가던 시대는 가고, 냉장고에 의탁하여 먹고살아야 하는 세상이 온지 오래된 것이다. 우선 신선한 식재료를 구입한다고 매일 장을 볼 수 있는 가정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고, 또 구입한 재료를 매일 매일 두 번 이상 남기지 않을 만큼씩 조리할 여유를 가진 가정도 매우 드물게 되었다. 하물며 일인 세대의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고. 옛날의 좋았던 점만 강조하며 그리워하는 것은 자유지만, 냉장고 없이 그리고 즉석식품, 가공식품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늘어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아직 사고방식이 현실을 못따라간 과도기가 요즈음이기도 하다. 우리말 표현에 ‘끼니를 때운다’는 말이 있는데 적극적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니 생명유지를 위해 뭔가 먹는다는 소극적인 행위라는 의미가 내포된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1인 식사에 즐거움이 더해진 새로운 표현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교황과 추기경의 '따로 또 같이' 저녁 식사

그동안 영화나 TV드라마에 나오는 숱한 식사 장면은 두가지의 스테레오타입으로 나뉘었다. 여럿이 왁자지껄 즐겁게 먹거나 둘이서 행복하게 먹는 장면 등 함께 먹으면 즐거움, 혼자 먹으면 쓸쓸함과 외로움, 이런 이분법의 묘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나온 영화에서 깜짝 놀랄만한 장면을 보았다. <두 교황>이라는 영화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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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교황>은 이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와 현 프란치스코 교황 사이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영화다. 명배우 안소니 홉킨스와 조나단 프라이스가 각각의 역할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데,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서 평단의 평도 좋았고 관객들의 호응도도 높았다. 얼핏 보면 카톨릭의 전통적 교리를 지키려는 보수적인 베네딕토 16세와 진보적인 개혁을 주창하는 프란치스코 교황간에 충돌이 많을 것 같았지만 둘 사이에는 상호 존경과 신뢰가 생겨난다. 그리하여 재위하던 교황이 살아 생전에 퇴임하고 새로운 교황이 들어서는 미증유의 계승극이 원만하게 마무리 된다는게 영화의 전체 줄거리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에서 근무하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갑자기 로마 교황청에서 부름을 받는데, 그는 마침 추기경직 사직을 마음먹고 있던 터였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로마에 도착하자 그는 교황이 머물고 있던 여름 별장으로 안내를 받는다. 그리고 둘의 대화가 시작된다. 사직을 만류하는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사직을 허락해달라고 간청하는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많은 대화를 나눈다. 교황의 요청으로 하룻밤을 묵고 가게된 추기경은 뜻하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된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하되 따로 하는’ 기묘한 경험을 한다는 말이다. 교황의 요청에 의해 똑같은 메뉴를 같은 시간에 먹는데 각자 다른 방에 차린 식탁에 앉게 되는 것이다. 추기경은 교황이 혼자 식사를 하는 바로 옆 넓은 방 큰 식탁에 혼자 앉아 식사를 하며, 마음속으로는 이게 다 교황의 괴팍함이나 유별난 성격 탓이라고 치부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서 눈치를 채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추기경에게 이미 교황수업을 시키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묘사한 것이다. 교황이란 자리는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실감이 가지 않을 정도로 지고한 자리이다. 신자들에게는 그들의 하나님과 인간으로서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니까 얼마나 높은 자리인지 비신도들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러니 본인이 혼자 먹기 싫다고 때마다 아무나 불러 함께 식사를 할 수도 없는 자리인 것이다. 그렇다고 숱한 식사를 혼자 ‘끼니를 때우는’ 식으로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혼자 먹되 즐겁게 먹으라는 메시지를 앞으로 교황이 될 사람에게 가르쳐 준 것이라고 보았다. 영화를 안본 분들한테 스포일러가 될까봐 생략하는데 이 식사 장면의 전후와 메뉴 등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하는 1인 식사, 즉 혼밥의 정점을 교황님의 식탁에서 본 것 같아 좋은 영화를 감상하며 보너스까지 챙긴 느낌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서양에서도 혼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는 의견은 언론과 저술을 통해서 자주 접할 수 있다. 미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심란 세티는 그의 저서 ‘빵, 와인, 초콜릿’에서 혼자 하는 식사에서 배운 것이 그녀의 인생을 많이 바꿔놓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레스토랑에서 혼자 식사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싱글로 있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려면 2인이 되는 상태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함께 식사를 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식사를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빼앗아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모든 것이 변했다고 기술한다. 혼자서 하는 식사를 즐기기 시작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잘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그렇게 되면서 더욱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혼밥으로 엮어지는 교류와 공감

혼밥이 무언가가 결핍되었거나 불운의 산물이 아니기에, 혼밥을 본격적으로 즐기는 TV드라마와 영화는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 대가족의 해체도 빨랐고 1인 세대의 대두, 비결혼 비출산 풍조, 고령화사회의 도래도 한국보다 빨리 맞았으니 혼밥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일본이 빠른게 당연하다고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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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할 두 작품은 <심야식당>과 <고독한 미식가>다. 두 작품 모두 한국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커다란 인기몰이를 한 TV드라마다. <심야식당>은 한국, 대만, 중국에서 리메이크 되기도 했고 또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모두 같은 제목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深夜食堂'이란 이름의, 아니 '메시야' 그러니까 '밥집'이라는 이름의 술집같이 생긴 식당 이야기다. 이곳에서 손님들은 먹고 싶은 음식을 부탁하고 점장은 그걸 웬만하면 다 만들어준다. 그러면 손님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주문한 음식을 음미하며 맛있게 먹는다. 출출한 사람들이 술안주로 이것저것 만들어 달라고 하는데, 출신 불명의 주인이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어내며 거기에 오는 사람들과 교류를 한다는 이야기가 기본 구조다. 이 식당은 도쿄 신주쿠(新宿)의 번화가 가부키쵸 부근에 있다는 설정인데, 이곳은 유흥업소가 많아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라 밤늦게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기 전에 들리는 사람들이 주고객이다. 호스테스, 마담, 호스트, 야쿠자, 취객 등등이 그들이다. 이 심야식당 같은 곳이 일본에는 많이 있는데, 원작 만화가 나올 당시만 해도 한국에는 없고 일본에는 많은 이런 '밥집‘ 문화가 성립된데에는 한일간에 다음과 같은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첫째, 일본에는 혼자 술 마시러, 혼자 밥 먹으러 가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식당이 바처럼 카운터식으로 되어 있는게 그런 이유이다. 카운터에 앉아 음식과 술을 서브하는 마스터, 점장, 마담 등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밥을 먹고 가거나 술 한 잔 걸치고 가는 사람이 많다. 일본은 여자종업원이 나오는 술집(크라부<클럽>, 스나쿠)도 혼자 가서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하는 사람이 참 많다. 일본 전국 도시, 시골 할 것 없이 동네마다 마담 혼자서 알바 아가씨 한 명 두고 술 팔고 하는 '스나쿠(스낵. 가볍게 한 잔이라는 의미에서 보면 참 걸맞는 네이밍이다)'가 널렸다. 샐러리맨, 자영업자들이 혼자 들러 가라오케에 맞춰 노래하고 술마시고 그러는 곳인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골고루 사이좋게 돌아가며 노래 부른다. 마이크 한번 잡으면 놓지 않는 그런 사람은 별로 없다.

둘째, 일본사람은 술을 아주 천천히 마신다. 그리고 우리보다 약하게 마신다. 일본 사케는 알콜도수가 약 16도 전후다. 그걸 데우거나 해서 돗쿠리라는 한홉(180cc) 또는 두홉(360cc)짜리 병에 담아서 '오쵸코'라는 작은 잔에 담아서 홀짝 홀짝 마신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그렇게 마셔도 계속 마시면 꽤 취하기도 하지만... 소주도 물에 타서 연하게 해서 먹는다. 그래서 ‘진로’같은 소주병에 매직으로 이름 써서 '보틀킵‘ 해놓은 거 보고 놀란 한국여행자도 많을 것이다. 소주는 '오유와리'라고 해서 뜨거운 물로 희석해서 먹기도 하는데 사케 데워먹는 습관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위스키는 얼음과 물로 연하게 해서 '미즈와리'로 마시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셔보면 싱겁기가 닝닝할 정도다. 이런 술을 식당에 혼자 가서 천천히 한 두 시간에 걸쳐 식사를 해가며 마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점장하고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옆에 앉은 사람들과 교류를 할 여유도 생기는 것이다.

셋째, 이런 식당이 유지가 되는 사회적 풍습이 있다. 일본의 고급 스시집은 정가가 없는 곳이 많다. 아예 메뉴가 없는 곳도 적지 않다. '갓포우(割烹)'라고 하는 일본정식집도 정가가 없는 곳이 많다. '스나쿠'라는 술집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단골손님으로 유지되는 조그만 술집, 밥집은 손님들도 그 집이 망하지 않기를 바라니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격이 형성된다. 손님들이 알아서, 주로 먹은 양보다는 앉아있었던 시간에 비례해서, 적당히 내고 가는 그런 시스템이기도 하다. 또 다라코가 맛있으면, 신선한 가지 호박이 들어왔으면, 그만큼 원재료 사입에 돈이 들었을테니 하고 다른 날보다 알아서 더 내고 가기도 한다. 물론 일본도 이런 풍조는 사라져 가고 있다.

네번째로 이런 식당을 운영하려면 사회적, 경제적으로 야망이 없어야 한다. 신주쿠는 땅값이 아주 비싼 곳이다. 재개발하자고 은행, 부동산 개발업자 등이 숱하게 찾아 왔을 것이다. 그런데 변화와 개발을 거부하고 옛날대로 살겠다는 고집스러운 일본 사람이 적지 않다. 심야식당의 주인공도 그런 사람일 것이다. 매달 임대료 내가면서는 그런 식당은 유지가 안된다. 자기 건물이거나 아니면 고집스런 건물주가 ‘놀리느니 차라리…’ 하고, 인심 좋게 빌려주었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돈 벌어서 크게 확장해야지, 유명해져서 프랜차이즈 내야지 하는 마음을 먹으면 그런 식당은 유지가 안된다. 일본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이나 출세에 대한 야망이 적은 것 같다. 그게 전반적으로 사회가 안정되고 자민당이 60년 이상 집권을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평생 직장있어서 세끼 밥 먹고, 퇴근 길에 맥주 한 잔 하고, 프로야구 볼 수 있는 인생이면 만족했던 사람들이었다. 그게 흔들리고 깨져서 최근에 사회 각 분야에서 많은 문제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은 반대로 많은걸 포기한 N포세대니 해서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

얘기가 길어지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한마디만 덧붙이고 정리하자면 사실 이 <심야식당> 같은 밥집이 이미 일본에서도 점점 화석과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대형 체인업체의 이자카야, 파미레스(패밀리 레스토랑) 등에 밀려나고 있어서 유지가 힘들어지고 또 음식 하나 하나에 성의를 들인 걸 알아주는 손님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요리 하나하나가 다 일본사람들에겐 컴퍼트푸드(comfort food)다. 그런데 요시노야 규동, 맥도날드 빅맥을 컴퍼트푸드로 알고 사는 젊은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심야식당>에 나오는 단골손님이 대개 나이가 든 사람들이다. 고향의 맛을 알고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세대이자 가난했던 시절의 추억의 음식을 그리워 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손님들 중에 젊은 사람들은 대개가 시골 출신이다. 이바라기, 이와테, 아오모리 등등. 언젠가는 돌아갈 곳이 있고 소박하고 토속적인 음식을 추억으로 간직한 사람이려면 시골사람이라야 더욱 어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이 일본에서 인기가 있는 것은 바로 이렇게 사라져가는 또 하나의 '문화'가 노스탈지어(향수)와 리트로스펙티브(회고)로 화석화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잡고 있으려는 아쉬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인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작품이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도 열광적인 인기몰이를 한 것은 혼자 식사를 하는 풍습이 도처에서 부지불식간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서민적인 식당에서 즐기는 혼밥의 정수

<고독한 미식가>로 이야기를 옮겨보자. <심야식당>은 혼자 가서 먹고 싶은 메뉴를 점장에게 부탁해서 맛있게 먹으며 즐기는 문화이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점장과 카운터 너머로 대화도 나누고 옆의 사람들과 짧막한 교류도 하고 그런다. 말하자면 ‘과도기적인 혼밥 문화’라고 하겠다. 이에 비해 <고독한 미식가>는 혼밥 문화의 완성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 역시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처음엔 큰 기대없이 저예산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뜻밖에 대박이 나서 벌써 여덟 시즌째 장수하고 있다. 항간에는 주인공 배우가 늙어서 소화능력이 떨어지거나 식욕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만들 수 있는 작품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도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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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그 인기는 대단하다. 또 그에 부응하듯 한국편도 두 에피소드나 들어가 있다. 성시경이 출연하여 유창한 일본말을 구사하고, 이명세 감독이 카메오 출연을 하였던 서울, 전주편에 이어 지난 연말에는 부산편이 방영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이노가시라라는 비지니스맨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서민적인 식당에서 매끼를 즐긴다는 이야기이다. 돈카츠, 카레, 라멘, 오무라이스, 생선구이, 불고기, 볶음밥 등등 매회 메뉴를 바꿔가며 실제로 있는 식당을 찾아다닌다. 30분짜리 한편에 주인공이 먹으며 느끼는 감상과 소회는 나레이션으로 나온다. 오로지 주인공의 한끼 식사에 집중하는 이야기인데 사람들은 도무지 물릴 줄 모르고 빠져든다. 실제로 이 드라마에 나온 식당을 찾아다니는 ‘순례 가이드’집도 나오고 또 같은 집에서 같은 메뉴를 먹으며 촬영하여 올리는 유투버도 적지 않다. 이 <고독한 미식가>의 또 하나의 특징은 주인공이 술을 전혀 먹지 않는다는 점이다. 술의 힘으로 타협하는 맛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의 진정한 맛을 혼자 식사를 하면서 제대로 감상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설정한 것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숱한 이들이 피할 수 없으니 즐겨야 하는 혼밥의 시대에 앞서가는 작품이라 하겠다.

그러나 일본 역시도 모두가 고독한 미식가인 이노가시라 같지는 않아서, 아직은 식당에 혼자 들어가서 고기를 구워먹거나 하기엔 용기가 필요한 손님, 특히 여성들이 있어서 1인용 식탁을 꾸민 곳이 늘어나고 있다. 식구들이 함께 간다는 의미의 ‘패밀리 레스토랑’에 1인석이 생겼는데 반응이 좋아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는 앞으로의 트렌드를 짐작하게 해준다.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 이주익

이주익

영화제작자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영화 <워리어스 웨이>, <만추>, <묵공> 을 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음식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음식 전문 서적 수천 권을 보유중이다. 음식 관련 영화와 TV 드라마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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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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