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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동화

은하열차

은하열차 은하열차
야간열차를 타봐야 인생을 알 수 있다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을 지나 오로라가 빛나는 얼음의 왕국까지 갔던 기차 여행은 할아버지가 즐겨 하던 무용담이었다. 이제 기차는 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다. 지상의 기차는 모두 멈춘 지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달리는 기차가 딱 하나 있다. 바로 은하를 달리는 열차다. 그 은하열차를 내가 타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정말 기뻐하셨을 거라고 아빠는 몇 번이나 말했다. 할아버지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 지구가 온통 얼음과 눈으로 뒤덮이기 전이었다.

출발을 알리는 기적 소리가 울렸다. 할아버지가 탔던 고색창연한 기차와 은하열차가 닮은 점이라고는 완벽히 복원된 기적 소리뿐이었다. 기적 소리가 향수를 불러일으켰는지 서리 낀 차창 밖의 아빠는 어딘가 벅찬 표정을 지었다. 내가 열차에 올라타는 순간까지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던 엄마는 기어이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기 시작했다. 드디어 열차가 눈보라를 일으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창 너머 부모님은 손을 흔들며 몇 발자국 따라 왔지만 눈 깜짝할 새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푸른 하늘을 가르고 두터운 구름층을 뚫고 난 뒤로 이내 어둠이 펼쳐졌다. 아무 미동도 없이 열차는 나아갔다.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는 오직 차창 밖의 풍경뿐이었다. 아니, 그것도 거의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기차는 할아버지가 탔던 야간열차처럼 검푸른 밤을 달렸다.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다. 얼음 부스러기 같은 빛이 사방에 흩뿌려져 있었다. 운석 조각들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기억나지 않는 꿈처럼 아득히 멀어졌다. 천체 수업 시간에 수도 없이 봤던 풍경이었지만 코앞에서 보니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 문득 돌아보니 막 내가 떠나온 곳이 작고 푸른 점처럼 보였다. 일주일 뒤 나는 지구로부터 약 60억 킬로미터 거리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별에 내리게 된다. 명왕성, 그곳이 목적지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별들이 내는 빛 사이를 열차는 조용히 달렸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는 기척에 눈을 떴다.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어젯밤 한숨도 못 잔 탓이었다. 제복을 입은 승무원이 서있었다. 
“검표입니다. 신분증도 함께 주시죠.”
날카로운 눈초리의 승무원이 말했다. 출발 전에 철저한 검표와 검역을 거친 뒤였지만 어쩐지 긴장이 됐다. 나는 코트를 젖혀 재킷 안쪽 주머니에서 열차표와 신분증을 꺼내 내밀었다. 승무원의 표정이 달라졌다. 
“좋은 학교죠.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승무원은 미소까지 지었다. 코트 속에 내가 입고 있는 교복을 본 사람들은 대개 그런 미소를 지었다. 선망과 동경, 다소 질투가 섞인 눈이 내게 향하는 순간을 나는 즐겼다. 지구 아이들 대부분은 태어나면서부터 한 가지 목표를 가진다. 바로 태양 마크를 다는 것. 그 태양 마크가 내 교복 가슴에 큼직하게 붙어있다. 갓 선출된 대통령이 내가 입학하게 될 학교 출신이었다. 관료들 대부분도 같은 학교 출신이었다. 대통령이든, 수상이든, 기업가든, 로켓 조종사든,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이다. 학교만 졸업한다면 성공은 보장된 것이었다. 
“그런데 좀 늦었군요.”
승무원의 말대로였다. 나는 예정보다 늦었다. 출발 직전에 미열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신체검사 결과를 받고 재검까지 초조했던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진땀이 난다. 다행히 다시 실시된 신체검사에는 무사히 통과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일주일 늦게 출발하게 됐다. 은하열차는 일주일 간격으로 운행됐다. 

아마 지금쯤 다른 아이들은 학교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있을 것이다. 오리엔테이션에 빠지는 대신 간단한 테스트가 있을 거라는 메일을 학교로부터 받았다. 불안했다. 간단한 테스트가 뭘까. 입학 허가를 받기까지 수많은 시험을 치렀다. 학과 시험은 물론 체력, 지능과 인성 검사까지 각종 시험에 통과해야만 했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아빠의 돈과 내 시간을 쏟아 부었지만 보상이 확실했으니 그만한 대가는 치를만했다. 나는 어떤 테스트든 반드시 통과해서 꼭 졸업하고 말 거다. 
“입학 축하합니다.”
승무원이 내 열차표와 신분증을 돌려주며 말했다. 나는 고맙다고 대답했다.

승무원이 다음 칸으로 사라진 뒤 나는 몸을 통로 쪽으로 길게 빼고 승객들을 훑어봤다. 코털을 뽑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을 뿐, 뒤처진 학생은 나 혼자뿐인 것 같았다. 객차는 반쯤 차 있었다. 내 옆과 앞 좌석은 비어 있었다. 나는 졸다가 깨서 잠시 창 밖을 내다보다 다시 잠이 들곤 했다. 창 밖은 지루한 풍경이 지속되고 조용한 객차 안에는 이따금 코 고는 소리만 들렸다. 잠결에 곧 화성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역에서 내리고 새로 타는 승객들 때문에 객차 안이 잠시 부산스러워졌다. 드디어 내 앞 좌석도 주인을 만났다. 호리호리한 몸에 망토처럼 풍성한 코트를 입고 갸름한 얼굴이 유독 창백한데다 짧은 머리카락은 불타오르는 것처럼 붉었다. 화성인이었다. 화성인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내 또래인 것 같았다. 화성 나이로는 일곱, 여덟 살쯤 됐을 거다. 
재미있냐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재미있나? 누구도 선뜻 재미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딱히 재미있지도, 재미없지도 않았다. 그저 남들이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각자가 정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좋았다.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나는 내 방을 찾아온 외계인을 기억한다. 다섯 살 때였다. 푸르스름한 별빛이 희미하게 비추고 있는 침대 맡에서 낯선 이의 기척을 느끼고 잠을 깬 나는 즉시 그가 외계인임을 알아챘다. 수없이 꿈꾸던 순간이지만 그 순간은 절대 꿈이 아니었다. 외계인은 나를 향해 뭐라고 속삭였고 나는 귀 기울였지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외계인은 그대로 떠나버렸고 나는 눈물을 흘리며 창가로 달려가 외계인의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 그때 내가 우주 공용어를 알았더라면. 아빠는 외계인이 찾아왔다는 내 이야기에 나도 몇 번 만났지, 라고 말했고 엄마는 어서 아침 먹고 유치원에 가라고 했다. 부모님은 외계인보다 더 말이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다르다.

나는 그간 열심히 익힌 우주 공용어로 인사를 건넸다. 창 밖만 내다보고 있는 빨간 머리의 아이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인사말을 건넸다. 그제야 아이는 나를 힐끗 바라봤다. 나는 태양 마크가 잘 보이도록 코트를 젖히고 가슴을 쭉 폈다. 화성인이라도 내가 입학할 학교의 명성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얼음처럼 투명한 눈동자에는 아무런 표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아이의 눈은 다시 창 밖을 향했다. 화성 아이는 공용어를 모를 수도 있다. 아니면 내 어색한 발음 때문인가. 아무리 애써도 좋아지지 않는 발음은 내 콤플렉스였다. 그래서 준비한 게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통역기를 꺼내 들었다. 몇 달 동안 엄마를 졸라서 산 것이다. 엄마는 내게 통역기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지만 그건 평생 지구에서 살다 죽을 엄마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나는 통역기를 화성 언어에 맞췄다. 통역기를 거친 내 목소리가 화성 언어로 흘러나왔다. 안녕, 이라는 단순한 언어는 다소 길게 발음되었다.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현악기에 가늘고 높은 새 소리를 합한 것 같은 화성어는 언어라기보다는 노래처럼 들렸다. 여전히 아무 반응도 없었다. 화성인이 아닌가. 외모는 화성인이 틀림없지만 요즘은 행성 간의 혼혈족도 드물지 않았다. 이번에는 목성 언어로 바꿔 인사말을 했다. 끌로 바위를 긁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역시 아무 반응도 없다. 토성과 명왕성 언어 기능까지 이용했지만 소용없었다. 내 통역기는 그것이 고작이었다. 비싼 통역기는 우리 은하 밖 행성 언어까지 통역할 수 있지만 내 통역기는 태양계와 명왕성까지가 한계였다. 화성의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머쓱해져서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섯 살 때 내 방에 찾아온 외계인을 그냥 보냈을 때처럼 한없이 서글픈 마음으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 나는 무엇이든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입학하게 될 학교와 내 앞에 펼쳐진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하다못해 야구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다. 약한 중력 탓에 수없이 홈런이 터지는 우스꽝스러운 화성 야구에 대해 이야기하며 함께 웃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차창 밖에는 부연 성운이 음울하게 펼쳐져 있고 까만 유리창 위에는 창백하고 갸름한 얼굴이 무심하게 비춰져 있었다. 그 얼굴을 보다 나는 깨달았다. 나는 완전히 무시당한 것이다. 열차 안은 서늘했지만 내 얼굴은 화끈거렸다. 그때 요란한 울음소리가 터졌다. 
나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부부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 새로 탑승한 승객들이었다. 여자의 품에 아기가 안겨 있었다. 아기 울음소리가 잠자던 승객들을 깨웠다. 승객들 모두 불쾌한 얼굴로 부부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모두 여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여자는 아기 다루는 데에 형편없이 서툴렀고 심지어 사과도 할 줄 몰랐다. 우주법 상 여자는 남성 보호자와 동반할 때만 은하열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여자의 보호자임이 분명한 남자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여자는 아기를 안고 허둥지둥 객차 문을 열고 나갔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희미해지고 객차 안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무엇이 이상한 걸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아무 것도 이상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역시 뭔가 이상했다. 신경을 건드리는 뭔가가 있었다. 절대 그럴 리 없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이게 그것인가. 그래, 그거구나. 

나는 조용히 가방 속을 헤집었다. 찾던 것이 손에 닿았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손에 쥐었다.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기숙학교의 아이들에게 들킨다면 틀림없이 비웃음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챙겨 넣은 것, 내가 기억하는 모든 순간 내 옆에 있었던 친구, 외계인이 찾아왔던 밤의 유일한 증인, 털이 닳고 누덕누덕한 진회색 쥐 인형은 몰골이 얼마나 흉측한지 누이동생을 놀래는 데도 그만이었다. 나는 쥐 인형을 앞 좌석을 향해 던졌다. 높고 가느다란 비명 소리가 객차 안에 울려 퍼졌다. 나는 머리 위의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에 승무원과 우주 경찰이 달려와서 소년, 아니 화성의 소녀를 끌고 나갔다. 

나는 어두운 창 밖을 바라보았다. 유성의 무리가 회오리를 그리며 저 멀리 스산히 빛나고 있었다. 나는 창 위로 비치던 창백하고 갸름한 얼굴을 떠올렸다. 아기의 울음이 터진 순간, 고개를 돌려 아기를 바라보던 얼굴에 퍼지던 표정을. 그때 빛나던 얼음처럼 투명하고 순수한 눈을. 그것은 내 어머니와 사진으로만 봤던 내 할머니와 외할머니밖에 지을 수 없는, 한없이 부드러운 애정이 담긴 눈빛이었다. 나는 텅 빈 앞 좌석을 바라보며 이것이 분명 학교에서 말한 테스트고 이번에도 무사히 통과했다고 생각했다. 
최상희(1972년생)_소설가, 『델 문도』, 『바다, 소녀 혹은 키스』 『하니와 코코』 『그냥, 컬링』 『칸트의 집』, 여행서 『다시, 제주』 『오키나와 반할지도』 『북유럽 반할지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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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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